첫 기착지는 두바이

 

두바이는 나의 첫 중동이었다. 파리에 도착하기 전 짧은 레이오버로, 황금빛 석양에 물든 ‘저녁의 두바이’를 온전히 즐기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그러나 공항을 나서자마자 밀려오는 후끈한 공기, 낮은 각도로 내리쬐는 태양, 그리고 독특하면서도 부드러운 향을 풍기는 바람이 나를 감쌌다. 익숙하지 않은 온도와 리듬 속에서 나는 조심스럽게 두바이와 첫 인사를 나누었다.

하지만 여행은 언제나 여유롭고 낭만적이지 않다. 어느 순간 예기치 않게 찾아오는 변수 앞에서, 방심은 작은 위기로 이어지곤 한다.

그날, 정오를 막 넘긴 시간. Jumeirah 2 지역의 Arabian Tea House에서 푸짐한 아랍식 브런치를 즐긴 후, 나는 가뿐한 발걸음으로 주택가를 구경하고 있었다. 파스텔톤의 이국적인 집들을 보며 감탄하고, 카메라를 꺼내 여기저기 찍으며 걷기 바빴다. 그러나 태양은 텅 빈 하늘 한가운데 떠 있었고, 도시의 표면은 용광로처럼 달아올랐다. 뜨거운 바람이 뺨을 스치고, 아스팔트 위로 물결 같은 열기가 아른거렸다. 조용한 주택가를 따라 걷던 나는, 어느 순간 숨이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피부 위로 내려앉는 열기는 마치 납처럼 묵직했고, 심장은 서둘러 어디론가 도망치려는 듯 빠르게 뛰었다. '이러다 쓰러지는 건 아닐까?' 낯선 두려움이 스쳤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물도 없고 와이파이도 터지지 않아 우버를 부를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사막의 태양 아래, 나는 그야말로 작고 무력한 존재가 되어 있었다.

그렇게 몇 분을 더 걸었을까. 눈앞이 아득해질 즈음, 문득 작은 가구점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거의 본능적으로 문을 밀고 들어갔고 순간, 차가운 공기가 피부를 감쌌다. 다행히도 열기로 흐려졌던 의식이 서서히 맑아지며 숨이 고르게 돌아왔다. 나는 직원에게 다급하게 와이파이를 물었고, 신호가 잡히자마자 우버를 불렀다.

차에 오르자마자, 우버 기사는 밝고 친절하게 나를 맞이했다. 룸미러로 땀에 푹 젖은 생쥐꼴을 한 나를 바라보며 웃음을 지었다. 그의 표정에서 따뜻한 친근함이 느껴졌다.

“이곳의 낮 기온은 예상보다 훨씬 가혹합니다. 가끔 이렇게 더위에 지쳐 쓰러지는 분들도 계시죠.” 그는 말하며 나를 걱정스레 바라보았다. “어제도 비슷한 일이 있었습니다. 한 동양 여성분이 택시를 타자마자 더위를 잔뜩 먹었는지 기절을 하는 바람에 병원으로 모셔다드렸죠. 다행히 큰일은 아니었지만, 조심하셔야 합니다. 괜히 이곳 사람들이 터번을 두르는게 아니예요.” 그가 말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아찔했던 내 상황이 새삼 실감 났다. 더 오래 머물렀다면, 그리고 가구점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어땠을까? 머릿속으로 여러 가지 가능성을 떠올려 보았지만, 그중 어느 것도 유쾌한 결론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정말 죽을 뻔했어요, 기사님. 작은 점들이 서서히 시야를 가리더니 점점 눈앞이 어두워지더라고요. 디지털 노마드를 하러 유럽에 가야 하는데, 가기도 전에 열사병으로 천국행 할 뻔했네요 하하하!”

한바탕 웃고는 우리는 잠시 침묵 속에 있었다. 차창 너머로 두바이의 도로가 기계적으로 흘러갔다. 어느 순간, 나는 자연스럽게 기사와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는 이란에서 온 이민자였고, 기러기 아빠라고 했다. 어린 자녀들이 조국 이란에 있고, 두바이에서 일하며 돈을 벌어 언젠가 돌아갈 계획이라고 했다. 신기한 인연이었다. 나는 어릴적 캐나다 몬트리올로 이민을 갔고, 우리 아버지도 한국에서 기러기 아빠 생활을 하셨다고 했다. 뜻밖에도 우리는 공통점을 찾았고, 그는 내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했다.

“앞으로도 건강하게, 꿈꾸는 삶을 잘 살아가길 바랍니다. 반짝이는 그 마음을,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잃지 않기를 바라요. 그 마음이 있어야만, 어쩌면 삶이 조금은 더 아름다워질 거니까요.”

그는 따뜻한 미소와 함께 나를 응원하며 작별 인사를 건넸다. 그 눈빛 속에서 나는 묘한 연대감을 느꼈다. 낯선 땅에서 같은 하늘을 바라보는 이방인들만이 공유할 수 있는 감정이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두바이는 강렬한 기억을 남겼다. 매끈한 건축물, 친절한 사람들, 그리고 내 몸이 기온에 얼마나 취약한지를 깨닫게 해준 순간들까지. 다음에 두바이를 다시 찾는다면, 이번엔 저녁의 두바이를 온전히 만끽하고 싶다. 물론, 한낮의 태양 아래서는 절대 방심하지 않겠다는 다짐과 함께.

 
 

Arabian Tea House에서 먹었던 아랍 에리메이트식 식사. 스크램블 에그, 토마토, 혼합 올리브, 장미잼, 올리브 오일과 함께한 자타르, 라브네, 할루미 치즈, 신선한 크림과 꿀이 담긴 브런치 트레이.

Jumeirah 2 주택가 풍경

Jumeirah 2 주택가 풍경

친절했던 우버 아저씨

부르즈 할리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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