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윽고, 마음으로 보는 세계

A Couple in Guggenheim (2024)

낭떠러지 끝에 선 순간.

스스로가 아니면 그 누구도 구할 수 없다는 걸 느끼는 순간.

더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고 여겨지는 순간.

“최선을 다했는데. 나 정말 열심히 했는데…”

스스로의 한계에 부딪히는 순간.

시대와 시기라는 두터운 벽에 갇혀 막막함만 보이는 순간.

익숙하고 사랑하던 것을 결국 잃고야 마는 순간.

아이러니하게도, 그제야 비로소

가장 소중한 것을 당신은 손에 쥐게 된다.

막연한 집착과 불안에서 비롯된 불순물들,

예민함의 잔해들이 서서히 빠져나가고,

힘이 빠진 끝에

마침내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고야 마는 것이다.

아무 계산도, 아무 생각도 따르지 않는

극히 즉각적인 상태.

무아지경.

그 모습은,

어릴 적 어머니가 까주신 귤을 먹으며

그리스 로마 신화를 읽다가

다리가 저려 오른쪽 다리를 달달 흔들던 순간과 닮아 있다.

그 순간,

당신은 아무것도 담기지 않은

깨끗한 그릇이 된다.

그리고 그제야 ‘진짜’가

하나둘씩 담기기 시작한다.

세상의 모든 진심이 담긴 예술이 당신의 것이 되고,

당신이 내뿜는 모든 것도

진심이 담긴 예술이 되어간다.

어설프든 정교하든,

진심을 지닌 이들이 마음의 눈에 또렷이 들어오고,

‘척’하며 살아가는 이들의 기계적인 에너지도

그저 대화의 리듬을 위한 피상적인 대화들도

자연스럽게 읽히기 시작한다.

한강의 시 한 줄 한 줄이 가슴에 깊이 박히고,

10년 전 들었던 혁오의 초창기 가사들이

다시 살아 숨 쉬며 당신 안을 맴돈다.

딱딱하게만 느껴졌던 성경의 문장 앞에서

문득, 무릎을 ‘탁’ 치게 되는 순간도 찾아온다.

마음이 말랑말랑해져서일까.

어느 로맨틱 코미디 속 한 대사에,

왕가위 영화의 나레이션 한 줄에

왈칵, 눈물이 쏟아진다.

스쳐 지나가는 타인의 작은 친절에도

문득, 인류애라는 거대한 감정이 마음을 적신다.

‘진심’이라는 마음이 피어나기 시작하자,

그 어렵게 느껴지던 주제의 공부와 일에도

본질과 의미에 자연스럽게 몰입하게 되고,

그 모든 것이 어느새 당신의 것이 되어 있다.

당신 스스로를 드러내는 일에도

점차 거리낌이 사라진다.

진심으로 대하게 되면,

더 이상 타인의 반응을 재지 않게 되고

그 안에서 ‘여유’가 조용히 잉태된다.

그리고 그 여유는 작지만 단단한 기운이 되어

사람들을 이끌고, 끌어당긴다.

문득, 당신은 그 ‘진심’의 에너지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세상의 모든 것이

더 형형색색으로 보이고,

더 감동적이고, 더 재미있고,

더 맛있고, 더 궁금해진다.

더 많은 곳에 가고 싶어지고,

더 이색적인 공간을 경험하고 싶어지며,

더 낯선 사람들과

그 ‘진심’의 주파수가 통하는지 확인해보고 싶어진다.

그러다 보면 이상하게도

신기한 접점들이 생겨나고,

데자뷰 같은 순간들이 찾아오며

“이건 운명이야!” 하고 외치는 날이 잦아진다.

어느새,

당신만의 리듬과 파동에 맞는 것들이 주변에 스며들고,

뜻밖의 기회들이

당신을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곳으로 이끌기 시작한다.

감사의 마음이 차곡차곡 쌓이고,

그 마음을 시작으로

감사할 것들이 끝없이 확장된다.

당신은 마침내 깨닫게 된다.

자의적이든 타의적이든,

쥐고있던 것들을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던 그 시간들 속에서

조용히 피어나던,

야들야들한 민낯 같은 ‘진심’의 정체는

결국 인간 본연에 내재된

‘사랑’이었다는 것을.

그래서 모든 인간은,

그 존재만으로도 ‘사랑스러운 존재’라는 것을.

그리고 인간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는,

결국, ‘서로 사랑하기 위해서’였다는 것을.

Previous
Previous

탐색 여행자의 회고록

Next
Next

첫 기착지는 두바이